나와 남자친구 우리에게는 강남 가는 일이 연중행사만큼 드문 일.
워낙 동네 주변을 좋아하고 궁이 있고 산이 있는 조용한 이곳을 좋아하는 편이라 미팅이나 일이 강남에 생기면 미리 괜히 아플지경으로 힘들어 하곤 한다.
그러던 남자친구에게 갑자기 생긴 삼성동 미팅에
급한일이 없던 나는 동행을 해주기로 했다.
(갑자기 강남이라니 이마를 탁치며 작업실을 정리하다가 난 왜이렇게 강남을 힘들어 할까 싶어졌지만 딱히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막상 가면 잘 지내고 미팅도 잘 하고 오는데 돌아오는 길 광화문을 볼때면 풍선터지듯 막혔던 숨이 팍! 하고 쉬어지는 느낌)
드디어 삼성동 도착.
아까 작업실에서는 저녁 전 쯤 커피 한잔을 마셔야 겠다 했는데 갑자기 오는 바람에 마시지 못해서 혼미한 정신이 더 격해진것 같아 남자친구 미팅을 보내고 급하게 두리번 거리며 카페를 찾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고개 오른쪽에 뭐가 반짝 거린다.
천주교 성당.
아니 이 강남 그것도 삼성동 한복판에 성당옆에서
미팅할 확률이 몇이나 되는것일까.
껴 맞추면 맞춰지는 이야기 일 수도 있겠지만 (동 마다 성당이 자주 있는 편인 한국) 그럼에도 나는 희안하게 가는 곳 마다 성당이 아주 가깝게 두둥 하고 나타나 소름끼치게 놀랄때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
우여곡절 끝에 국립미대 합격을 해서 이사간 첫날의 낭시에서도 지구상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 들면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는 구나 여러가지 생각으로 이삿짐을 옮기고 간단히 먹을것을 사러 나가는 길에 성당 발견.
낭시에 성당이 몇개 없는데 이럴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며칠 뒤 알게된 사실은 내 집 건너편이 낭시에서 가장 큰 수녀원이였다. 유명하기도 해서 큰 곳이기도 하지만 건물 크기도 버스 정류장 1개 정도 되는 길이니 무척 큰 오래된 역사의 프랑스 수녀원이였고 전세계에 뻗어있는 수녀원이였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그 안에 한국인 수녀님이 딱 한명 계셨었다. 어찌저찌 수녀님을 알게되어 험난하고 힘든 유학생활을 이 수녀원의 수녀님들 보호아래 잘 지낼 수 있었다.
또 하나 가까운 시일의 일로 예를 들자면 얼마전 한달동안 지냈던 제주도에서의 일이다. 강아지와 함께 지내야 하는 미션으로 힘들게 구한 숙소에 도착했던 다음날.
애견동반 숙소가 많지 않기에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예약 가능하기만 하면 숙소 컨디션과 대충 사진만 보고 구하는 애견주들. 우리도 역시 그러했다. 그러기에 더욱 숙소 주변이 어떤지를 전혀 몰랐는데 막상 와보니 시골 그 자체. 감귤밭, 당근밭,온갖 밭사이에 덩그러니 있던 숙소는 집뒤에 말들이 서서 밥을 하루종일 먹기도 하고 밤이 되면 불빛하나 보이지 않는 그런 동네에 저 멀리 하얀 동상이 보인다.
설마.
집 앞이 성당이였다.
그밖에 많은 예로 들만한 일화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이런식이라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게 여러번 되다보니 쬐끔 무섭기도.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상하게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카톨릭 신자이다.
내가 골라서 그렇게 된건 절대 아니고 친구가 되어
어느정도 잘 알고 지내다 보면 하나둘씩 커밍아웃을 한다. 심지어 아는 지인의 최근 커밍아웃 이야기는 가히 어마어마 한 카톨릭 집안이였다는것. 게다가 카톨릭에서 결혼한 지인들도 제법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끼리는 보통 유행하는 예쁜 물건 사면 어디서 샀냐 핫한 카페등을 물어보던데 우리들은 예쁜 성물 사면 샵을 공유하고 있고 요즘 카톨릭에서 어떤 이슈가 있는지 등등을 이야기하게 된다. 선물을 주게되면 관련된 제품을 주고 받게 되며 무슨일이 있다면 기도를 해주게 되니 참 재미있는 관계들이다.
난 카톨릭에서 벗어날 수 없는것인가.
동네마다 성당이 있으니 그럴 수 있어
카톨릭 믿는 사람이 을마나 많은데 하면 할말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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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미팅장소 옆이 성당인것도 신기해 온김에 기도드리러 성전으로 향했다.
성당이 참 좋은건 어디나 문이 활짝 열려있고 정갈하고 깨끗하며 차분하다는것. 미팅중인 남자친구의 기도를 간단히 하고 내려오는길. 주보가 있어서 이번주 소식을 잠시 읽어보고 있었는데 그 옆에 조그맣게 그토록 구하고 싶었던 추기경님 엽서가 있었다.
이거 파는거 아니였어?
이렇게 그냥 나눠준다고??
여기도 돈을 드려야 하는거 아니야?
엽서 주변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비용을 놓고 가는 함은 없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주보 옆에 있으니 제공이겠구나 싶어 내꺼 하나, 엄마꺼 하나 두장 챙겨서 신나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절이랑 성당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아마도 편안하고 클래식한걸 좋아해서 그런것 아닐까. 이왕 기도를 한다면 조금 더 내 취향인 종교에 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업실 앞에 북한산 국립공원을 조금 올라다가보면 절이 하나 있다. 어지러운 작업실앞에 몇걸음만 가면 울창한 숲이 나오고 그 안에 고요하고 호젓한 절이 나오니 안좋아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어찌되었건 좋아하는 무엇을 믿는 다는건 좋은 일인데
자꾸 새로 가는곳마다 옆에 나타나는건 좀 신기한 일이긴 한것 같아서 기록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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